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스위스 이류 현상

by 1등복권 2022. 11. 14.
반응형

 기후변화로 인해서 알프스 산맥이 산사태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낙석에 건물이 무너지고 인명 피해까지 나고 있습니다.

 

스위스 중남부의 칸 더슈 테크, 외쉬넨 호수

 스위스 중남부에 있는 칸더슈테크는 인구 1300여 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그림과 같은 풍경 때문에 관광지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마을 위쪽에 있는 외쉬넨 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산에서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와서 만들어졌습니다.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하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 지역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주요 산업이 관광인만큼, 영어로 된 마을 홍보 웹페이지도 있습니다. 첫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나옵니다. '바로 그 순간 스위스 솔 향이 산 아래 호숫가에 퍼지고, 산마루에선 마르모트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이 광대한 자연에 감탄하면서도, 사방에 높이 치솟은 바위산에 둘러싸여 안전하고 든든하다고 느끼죠. 그것이 바로 이곳이 수세기 동안 변함없는 이유, 그리고 당신이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입니다.' 함께 올라와 있는 아름다운 사진들과 잘 어울리는 설명입니다.

주민들을 위한 마을 정보 사이트도 있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첫 화면에 지도와 함께 독일어로 된 경고문이 뜹니다. '이동 정도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하루에 약 1cm입니다. 서쪽 사면 아래쪽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에 9cm까지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규모 낙석이나 토사 붕괴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영향은 현재 영구 출입 금지된 지역에서만 미칠 것으로 예측됩니다. 아래 지도에서 지역별 위험 수준을 참고하십시오.' 이 경고문에서 말하는 '이동'이란 칸 더슈 테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2974m 높이의 바위산 슈피처 슈타인 꼭대기에서 바위들이 흔들리면서 움직이는 것을 뜻합니다.

바위 이동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기후의 변화입니다. 산꼭대기의 영구동토층이 온난화로 인해서 녹아내리고, 녹은 물이 바위틈 사이로 스며들고, 그 물이 내부 압력을 높여 바위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슈피처슈타인산의 지질구조 때문에 낙석 현상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래 10여 년 동안 변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 산에서 바위가 가장 빠르게 미끄러지는 부분은 1년에 6~8m씩 움직이고 있는데, 알프스 저 지역에서 이 정도로 변화가 큰 부분은 없다고 합니다. 일간 '스위스인포' 보도에 따르면, 칸 더슈 테크 마을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1120만 스위스프랑(약 155억 원)을 들여서 최근 너비 10m의 댐을 구축했고 여기에 곧 금속 그물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최신 기술을 이용한 관측 도구를 산에 설치하여 재난 발생 48시간 전 경고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은 버려야겠지만 주민들이 대피하여 목숨을 건질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목숨은 건지지만, 별 다른 방비책은 없는 것입니다. 암설류가 마을을 덮치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2000만㎥ 정도의 암석과 흙이 쏟아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피라미드 8개에 맞먹는, 마을을 덮을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관광 수익 때문에 감추는 위험

 5년 전 본도 마을에서 일어났던, 지난 한 세기 동안 스위스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산사태가 있었습니다. 스위스 동남부의 본도 마을은 알프스산맥의 본다 스카 계곡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이곳 피츠챙갈로 산에서 400만 ㎥에 달하는 바위와 토사가 부서져 마을로 쏟아졌습니다. 건물 99채가 부서지고 이 중의 절반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피해금액은 4100만 스위스프랑(약 568억 원)입니다. 이 사고로 스위스인 2명, 독일인 4명, 오스트리아인 2명 등 등산객 8명이 실종되고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2012년에 이 마을이 비슷한 산사태를 겪어서 자동 경보 시스템을 설치한 덕분에 미리 대피할 수 있어서 인명 피해가 그 정도에 그쳤습니다. 피츠챙갈로 산이 부서져 내린 주된 원인 역시 기후온난화로 인한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린 점으로 지적됩니다.

본도 산사태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이 마을이 속해있는 그라우뷘덴주를 고소했습니다. 자연재해가 예견된 것이었지만 필수적인 안전 경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유가족의 변호사는 공영방송 SRF 인터뷰에서 '사고 2주 전에 이미 피츠챙갈로에서 바위들이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것이 알려졌고 전문가들이 몇 주 혹은 몇 달 이내에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도 지방정부에서는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그라우뷘덴주 지방법원에 낸 소송에서 패소하자 스위스 연방법원에 상고를 했고, 연방법원은 올해 2월 그라우뷘덴 주정부의 과실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검찰이 주정부의 과실에 대해서 재조사 중에 있습니다.

본도 산사태 재조사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실제로는 정부가 예방 조치는 커녕 위험 사실을 알리는 것도 꺼릴 때가 많습니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서 현재의 스위스의 기온은 평균 2℃ 정도 올랐습니다. 전 세계 평균 상승치의 두 배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중에서도 알프스의 나라인 스위스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산사태, 이류(격렬하게 이동하는 진흙의 흐름), 낙석 등입니다. 1946년 이후 지금까지 169명이 스위스에서 산사태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현재 스위스 산악 지역의 총 336곳이 재해 감시 대상이고 이 중의 일부는 레이더나 GPS 센서 등을 이용하여 24시간 감시 중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수백 곳이 재해 감시 중이라는 사실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다가 2018년 11월 일요 신문에 의해서 드러났습니다.
감시가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지역이라면 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감시 현황을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제로는 관광, 부동산, 건축 등 지역산업의 이익과 시민의 생명권이 마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명권을 침해하는 기후위기 무대응, 스위스기후여성노인연대

 64세 이상의 스위스 여성 약 2000명으로 이루어진 이 단체는 2020년 12월 유럽 인권법원에 스위스 정부를 과실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은 여성 노인인데, 스위스 정부가 충분한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자신들의 생명권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은 2021년 5월 26일 사건을 맡겠다고 밝혔습니다. 유럽인권법원에서 다루는 사상 두번째 기후위기 관련 소송입니다. 유럽인권법원에 제기되는 소송은 많지만 실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법원에서 이 것이 받아들여진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시작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3년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우르겐 다 재단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정부를 고소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0%까지 줄이는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그 지방법원은 2015년 6월 24일 우르겐다 재단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이 국가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라고 판결을 내린 세계 최초의 사례입니다. 스위스 베른 시의회 의원(녹색당) 안네 마러는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내고 싶었고, 소송을 위해서 여성 노인 연대를 창립하게 됩니다. 폭염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여성 노인 인구라는 과학적 사실을 소송에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 노인 연대는 2016년 11월 스위스 정부에 '2020년까지 탄소 배출을 25% 줄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청원을 제출했지만 기각되었습니다. 같은 청원을 2017년 연방행정법원에 제출했지만 역시 기각되었습니다. '64세 이상의 여성만 기후위기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여성노인연대는 2019년 이를 스위스 연방대법원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사법부가 이 문제에 관여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기후위기는 법적 소송이 아닌 정치 채널을 통해 해결하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마러 가 보기에는 스위스의 판사들은 '기후위기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 문제를 다룰 용기가 없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성 노인 연대가 유럽 인권법원에 정부를 고소한 것은 스위스에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유럽 인권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헌법 전문가들은 그 판결이 기후위기의 책임에 관한 유럽 전역의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법정 소송이 기후위기 해결에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는 더 두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는 글

상상하기 힘든 비를 뿌리는 대기의 강

통가 해저 화산 폭발이 알려주는 것

산 넘어 산 쓰레기산 답이 없는 답답

반응형

댓글